디즈니의 실사화 캐스팅 논란을 보고서
어렸을 적 동화책을 무척 좋아했었다. 특히 도서관 구석에 박혀있던 낡아 떨어진 두꺼운 리더스 다이제스트 전집을 좋아했는데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삽화가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대출해서 읽고 반납했고, 이제 그 책들이 너무 낡아 폐기 스티커가 붙었을 때 넝마가 된 그 책을 내가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동화와는 그런 애틋한 추억이 있고 아직도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동화만의 특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서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도 많이 찾아보았다. 그런 중에 '인어 공주'가 실사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처음에는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곧 보기로 한 결심을 철회했다. 논란처럼 주인공의 인종이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단순히 내가 생각하던 어렸을 적 에리얼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디즈니 입장에서도 과거의 명작을 답습하기만 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과거의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서 완벽한 영상미와 완성도가 아니라면 거액을 들인 실사화가 욕받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디즈니가 모험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싫다는 쪽 반응이 굉장히 격렬했다. 보러 가지는 않았지만, 영화관에서 싸움이 벌어져 난리가 났다는 해외토픽을 보고 어쩐지 피곤해졌다. 심오한 주제의 독립영화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첨예하게 대립할 일인가. 다음 실사화도 비슷한 문제로 벌써 의견이 분분한데 보기만 해도 질리는 기분이다. 다음 영화도 굳이 돈을 들여 보러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재구성한 작품이 원작을 아성을 넘어서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동화라는 것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이라 그 스토리라인에 흠잡을 데가 없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완벽한 기, 승, 전, 결의 흐름이 있고 악한 사람은 심판받고, 착한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이야기마다 등장인물은 달라져도 이것이 바로 동서고금이 좋아하는 스토리라인이다. 그런데 디즈니의 악당들 1은 악역의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다. 디즈니의 악당들 1의 주인공은 백설 공주의 계모다. 악역도 원래는 대단히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상황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지 알 수 없다. 백설 공주와 왕, 그리고 계모인 왕비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이 책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읽는 내내 좋은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다. 어릴 적 트라우마에 의한 심경의 변화라고 하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어 개연성은 다소 떨어졌다.
책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도 별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트라우마 관리를 잘하자'인 것 같다. 아니면 '내 내면의 아이를 치유해 주자' 일 수도 있겠다. 백설 공주 계모도 무언가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궁금해지거나, 잘잘못은 양측 모두의 말을 들어봐야 알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면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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